책소개
저자 오카다 히데히로는 "누가 중국을 만들었는가"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중국의 역사, 곧 중국이라는 체제를 만들어낸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왔는가? 이 책은 사마천의 <사기>부터 청대의 <청사고>까지, 역사가들과 그들이 처했던 시대, 또 그들이 집필한 역사서의 내용 등이 어떤 연관에 있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목차
서장|중국인의 역사관 - 만들어진 ‘정통(正統)’과 ‘중화사상(中華思想)’
역사란 무엇인가?
시간을 연, 월, 일로 나눌 때 나타나는 문제점
‘히스토리’ = ‘역사’ 의 탄생
중국문명에서 역사의 출발
사마천(司馬遷)의『사기(史記)』가 창조한 ‘정통’ 역사관
변화를 기록하지 못하는 ‘정사(正史)’
현실을 왜곡하는『삼국지(三國志)』
두 개의 ‘정통’ 이 존재했던 남북조(南北朝) 시대
‘중화사상’의 기원, 『자치통감(資治通鑑)』
‘정사’ 의 체제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
근대화가 이뤄져도 변하지 않는 중국의 역사관
중국인을 사로잡고 있는 ‘정통’ 의식과 ‘중화사상’
제1장|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역사의 창조
사마천의 선조들
왜『사기』가 쓰였는가
황제(黃帝)는 누구인가
‘제(帝)’ = ‘배우자(配偶者)’
타이어가 난무하는 최고(最古)의 왕조, ‘하(夏)’
‘은(殷)‘ 왕조는 북아시아의 수렵민
서방의 유목민이 건국한 ‘주(周)’
시황제(始皇帝)의 천하통일까지 ‘중국’은 없었다
‘정통’과 ‘천명(天命)’
중국과 대만 관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혁명(革命)’ 이라는 이론
시간을 지배하는 자
중국 역사가들의 숙명
제2장|반고(班固)의『한서(漢書)』- 단대사(斷代史)의 출현
『한서』를 집필한 진짜 목적
유교 융성의 참된 설립자
반씨(班氏)와 왕씨(王氏)
‘신(神)과 같다’고 경외하던 종조부
어려움에서 벗어난 반첩여(班婕妤)
반백과 성제의 신뢰관계
‘비서(秘書)’를 감독하다
반고의 아버지, 반표(班彪)
『한서』, 마침내 완성되다
반고의 말로(末路)
왕망(王莽)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쓰인 책
제3장|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정통’의 분열
환관이 궁중에 대두하다
황건의 난이 유교를 쇠퇴시키고 도교를 일으키다
또 하나의 비밀결사, 오두미도(五斗米道)
천년왕국사상이 중국의 역사관을 바꾸지는 않았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사’의 구조
불우했던 진수를 일으켜 세운 장화(張華)
관직에 복귀한 진수
『삼국지』에 부과된 제약
『위지왜인전(魏志倭人傳)』은 신뢰할 수 없다
사마태국(邪馬台國)은 정치적 배려의 전형
제4장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중화사상의 억지
‘정통(正統)’을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주장
잇달은 ‘정사’ 편찬
수(隋)와 당(唐)의 황제는 선비족(鮮卑族)
진상을 은폐해왔던 역사서의 유교적 성격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모두 투르크계
북송(北宋)의 황제도 북방민족 출신인가
천하에 황제가 둘이라는, 존재해선 안 되는 사태
사마광의 피상적인 편찬 사업
중화사상의 탄생
제5장 송렴(宋濂)등의『원사(元史)』- 진실을 은폐하는 악폐(惡弊)
유목제국의 흥망
거란(契丹) 제국의 대두
거란을 멸망시키고 남하하는 금(金)
중국을 제패한 몽골 제국
원조(元朝)는 한족(漢族)의 정통을 문제 삼지 않았다
13세기부터 국호(國號)를 붙이는 방식이 바뀌었다
『원사』가 안고 있는 문제점
원조에 피라미드형 지방행정조직 따위는 없었다
중국이 분할되었던 100년간
우리들은 ‘정사’에 속고 있다
제6장 기운사(祁韻士)의『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欽定外藩蒙古回部王公表傳)』- 역사에 대한 새로운 도전
몽골을 서술하는『명사(明史)』의 입장
정치가 농단한『청사고(靑史稿)』의 편찬
보기 드문 역사서『흠정외번몽고회부왕공표전』
기운사 일족
관료가 되기까지의 기나긴 도정
과거에 급제하여 황제에게 직접 명을 받다
국사관(國史館)의 찬수관(纂修官)이 되다
사서(史書) 편찬에 드는 비용을 둘러싸고
잇달은 승진
생각지 못한 귀양과 조용했던 만년
『황조번부요략(皇朝藩部要略)』과 『몽고유목기(蒙古遊牧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사람
후기
역자 후기